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 BSB)의 멤버 닉 카터(Nick Carter)의 남동생이 아론 카터(Aaron Carter)이다. 한때 이 카터 형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당시 아론 카터는 지금의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아론 카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밑바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팝음악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아론 카터는 1987년 12월 7일생으로 가정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 때문에 아론 카터의 형 닉 카터는 자신의 가족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말을 말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 닉 카터는 1997년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다. 당시 아론 카터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때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히트가 아론 카터의 데뷔와 연결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론 카터가 독일에서 개최되는 백스트리트 보이즈 공연을 따라갔다가 관객들 앞에서 얘기치 않은 깜짝 공연을 하게 되었고 어른들이 그의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어른들이란 사업가 루 펄먼(Lou Pearlman)과 돈에 눈이 멀어있던 카터 형제의 어머니다.
그날 공연에서 아론이 불렀던 곡이 더 제츠(The Jets)의 크러시 온 유(Crush on You)였다. 이 곡은 그대로 아론의 데뷔곡이 되면서 독일 차트 5위를 기록하는 등 유럽에서 괜찮은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9살의 어린 아론은 형인 닉의 무대가 신기해서 한번 올라가 보고 그렇게 올라가게 된 무대를 통해서 바로 계약을 맺고 가수로 데뷔한 것이다.
루 펄만의 가수들이 그랬듯 아론은 먼저 유럽 위주로 활동한 뒤 미국에 진출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아론의 전성기는 2000년부터 시작된다. 아론은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있던 음반사인 자이브 레코드(Jive Records)에 들어가고 자이브는 어린아이가 부르는 파티 앨범 컨셉으로 2집을 제작, 미국에서만 3백만 장을 판매된다.
이때 미국의 초, 중학생들에게 아론 카터의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아론의 아이 원투 캔디(I Want Candy)와 아론스 파티(Aaron’s Party) 이 두 곡은 아론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01년에 나온 3집도 빌보드 차트 7위, 미국 내 판매량 100만장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리지 맥과이어(Lizzie McGuire)나 지미 뉴트론(Jammy Neutron)같은 어린이 프로그램들과 꾸준히 인연을 맺으며 자신을 알렸다.
이 3집 활동 때는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활동을 쉬고 있던 형 닉 카터가 아론을 또 한 번 도와주면서 사람들은 아론이 가는 곳마다 환호를 쏟아냈고 아론은 자신의 인기의 잔뜩 취해 있었다. 그러나 2002년에 나온 아론의 4집의 성적이 갑자기 떨어지고 마는데 이때 아론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16세, 변성기가 한창인 나이었다.
아론은 곧 성인이 되고 성인이 되는 순간 아론의 효용 가치는 다한 것이다. 자이브는 더 이상 아론의 앨범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2003년과 2006년 연이어 베스트앨범만 2장을 더 낸다.
아론의 부모님은 아론이 15살이 되던 2002년 루 펄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한다. 백스트리트보이즈 처럼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소송은 합의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아론 카터는 과연 얼마를 벌었을까? 아론은 자신이 실제로 벌었던 돈이 2억 달러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성년자 딱지를 떼자마자 아론이 확인한 자신의 신탁자금은 고작 200만 달러였다. 물론 200만 달러도 매우 큰돈이긴 하지만 그가 주장한 2억 달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부모님 세금으로 다 날려버렸다.
2006년에 카터 5남매 삶을 조명한 하우스 오브 카터스(House of Carters) 라는 리얼리티 쇼가 나왔는데 여기서 카터의 어머니는 카터형제를 대놓고 캐시 카우 라고 불렀다. 부모님이 카터형제를 돈으로만 본 것이다.
성인이 된 아론은 자신을 발굴했던 사기꾼 루 펄먼을 끝까지 믿고 아예 루 펄먼이 직접 설립한 레코드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한 곡(Saturday Night)을 발매하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아론은 곧바로 계약을 끝냈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7년에 루 펄먼은 3억 달러 폰지 사기로 감옥에 들어간다.
루 펄먼이 감옥에 들어감과 동시에 아론의 가수활동 또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후로도 계속 곡을 내기는 했지만 아론은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었다.
아론은 다음해인 2008년에는 대마소지 혐의로 체포되었고 2011년에는 ‘감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리햅(Rehab)에 들어간다고 발표한다. 참고로 리햅(Rehab)은 rehabilitation의 줄임말로, 알코올, 약물 중독 치료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형인 릭 또한 한때 술과 마약에 빠져서 재활하느라 큰 고생을 한 적이 있는데 닉은 결국 재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론은 술과 마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2012년에는 자매인 레슬리 카터(Leslie Carter)가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그 이후로 아론은 끝없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2013년에 아론은 결국 파산신청을 하면서 많은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때 아론이 돈을 벌기 위해 애프터 파티 투어(After Party Tour)를 시작했는데 2013년에만 166번의 공연을 했을 정도로 재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사실 아론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거의 매년 신곡, EP, 정규앨범까지 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고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론은 2017년에 자신이 의지하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정말 완전히 맛이 가 버린다.
아버지 사망 후 두 달 뒤인 2017년 7월, 아론은 음주운전과 대마 소지 혐의로 다시 한 번 체포된다. 이 때 찍힌 머그샷은 그나마 아론을 좋아하고 있던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현재 아론은 완전한 현실부정과 기행의 아이콘으로 변해버렸다. 보다 못한 형 닉이 도와주려 했지만 아론은 닉에게 적개심을 보이며 이를 거절했고, 이렇게 형제의 연은 끊기고 만다.
그러면서 아론은 자신이 1년에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가수라고 허세를 떨었지만 온리 팬(OnlyFans)에서 자신의 알몸을 공개하면서 돈을 벌 정도로 궁핍했다. 이외에도 포르노 배우 데뷔 선언을 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대인관계가 불안정해 힐러리 더프(Hilary Duff), 린제이 로한(Lindsay Lohan) 등 이성을 사귀었지만 그때마다 끝은 좋지 않았다.
2019년 유튜브에 공개된 영화 중에 ‘아이돌 사기: 루 펄먼 이야기’(The Boy Band Con: The Lou Pearlman Story)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이것은 엔싱크(NSYNC)의 랜스 베이스(Lance Bass)가 제작한 다큐로 사기꾼 사업가인 루 펄만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기서 랜스 베이스를 비롯한 루 펄만의 아이돌들은 그의 사기행각을 모두 폭로해 버리지만 아론은 이상하게도 그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론의 이러한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아론이 루 펄먼을 부정하는 순간 자신의 유일했던 전성기마저 의미가 없어지니 말이다. 아론에게는 루와 함께한 시절이 인생의 전부였고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최근 아론 카터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론 카터는 지난 11월 5일 오전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34살의 젊은 나이로 말이다. 이제 하늘의 별이 된 그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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